[인터뷰] 응축된 시간의 자리에서 — 유충목
Feb 2, 2026
물방울은 떨어지기 직전의 상태로 잠시 머문다. 유충목 작가는 이 불안정한 찰나를 유리라는 물성을 통해 공간 안에 멈춰 세운다. 사라지기 직전의 순간은 고정되지 않고, 빛과 시선, 움직임에 따라 달라진다. 그의 작업은 대상을 설명하기보다, 감각이 작동하는 순간을 드러낸다. 물방울과 유리, 빛과 공간, 그리고 관객의 움직임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작품은 하나의 장면으로 나타난다. 관객은 그 안을 지나며, 잠시 속도를 늦춘다.
Q.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물방울’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A. 물방울은 자연을 재현하기 위한 이미지라기보다, 사라지기 직전 응축된 시간의 상태에 가깝습니다. 곧 떨어지거나 증발할 운명을 지닌 이 불안정한 순간은 기억과 감정, 그리고 인간의 존재 방식과 닮아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이 잠시 멈춘 상태를 유리를 통해 공간 안에 정지시키고자 합니다.
Q. 여러 재료 중에서도 ‘유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유리는 투명하지만 모든 것을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 재료입니다. 빛을 통과시키면서 동시에 왜곡하고, 보이게 하면서도 사라지게 만듭니다. 이러한 성질이 제가 다루고자 하는 불확정성과 시간성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했습니다.
Q. 관객은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길 바라나요. A. 작품을 하나의 오브제로 ‘보는’ 데서 그치기보다, 그 안을 지나며 경험하길 바랍니다. 관객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빛과 형태가 달라지는 순간, 작품은 고정된 의미를 벗어나 하나의 현상이 됩니다. 그 변화 자체를 느껴주셨으면 합니다.
Q. 최근 작업에서 특히 달라졌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다면요. A. 개별 작품보다는 공간 전체가 하나의 상태가 되는 방식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물방울의 밀도와 여백, 빛의 흐름을 통해 공간이 끊임없이 변화하도록 구성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Q. 작업 속에 드러나는 한국성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 한국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이나 여백의 감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설명되기보다는 경험을 통해 감지되길 원하는 부분입니다.
Q. 관람객에게 남기길 바라는 질문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사라짐을 상실로 볼 것인가, 아니면 존재를 인식하게 만드는 조건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물방울은 그 질문이 잠시 머무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작업이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 지 기대됩니다. A. 물방울이라는 형상은 유지하되, 그것이 중심이 아니라 현상을 발생시키는 장치로 기능하길 바랍니다. 장기적으로는 빛과 공간, 관객의 경험이 하나의 구조로 작동하는 작업으로 확장해 나가고 싶습니다.
Interview by ARTN Edition